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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섬진강, 여기서 흐르다. / 진안 데미샘

by 눌산 200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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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530리를 흘러 남해바다로 스며든다.


여행은 추억을 더듬어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나고 자란 고향을, 지나간 사랑을, 다가올 미래를 그리워하는 허한 마음이다. 문득 그리움에 서러움이 복받쳐 오는 날,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게 여행이다. 여행을 직업으로 갖고 여행하며 사는 사람도 그 그리움 때문에 떠난다. 그곳에 가면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삭힐 수 있을까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지나 여행 추억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단지, 그 추억을 거슬러 오르는 그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원신암마을의 데미샘 표지석

 

퍼가도 퍼가도 마르지 않는 실핏줄 같은 강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배낭을 꾸린다.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을 찾아 나선 길이다.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으로 전라북도 진안군 신암리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에서 발원해 광양만에 이르기까지 3개도 10개 시군에 걸쳐 약 212.3km를 흐른다. 동으로는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서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을 둔 산협을 흐르는 섬진강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의 마지막 정점인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며 530리 긴 여정을 마감한다.

나의 고향은 섬진강이다. 정확히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중하류지역. 덕분에 장마철이면 누런 황톳물로 뒤덮인 섬진강을 보고 자랐다. 한없이 넓은 강이 순식간에 황톳물이 되어 흐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래서일까,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장마철만 되면 그리움에 몸살이 난다. 강을 따라 걷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원신암마을의 빈집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중략).......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蟾津江)을 그렇게 질팍한 우리네 삶에 비유했다. 무엇이 그리도 한스럽고 무엇이 그리도 그리웠던 세월이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그렇게 도랑이 강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 듯, 회한의 삶에 익숙했지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을 살았었다.

데미샘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강마을 사람들의 영원한 터전이 되고 있는 섬진강의 속살이다. 연일 찜통더위가 계속되거나 잠시 번잡한 세상사를 잊고 싶을 때, 또 바쁜 도시생활에 숨이 턱 막힐 즈음 강을 따라 걸어보라. 느린 강은 전쟁터 같은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보내고도 남을 만큼 느긋하기 그지없다. 하루나 이틀만, 딱 하루 만이어도 좋다. 느린 강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보라.




섬진강의 최상류 계곡


530리 강행의 출발지 데미샘


진안에서 원신암 마을까지는 하루 네 번 버스가 다닌다. 진안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섯시 첫차가 막 출발 한 후였다. 덕분에 백운면에 한 대밖에 없다는 택시를 불렀다.

"섬진강이 그렇게도 좋아요?"

이따금 섬진강 도보여행을 위해 찾는 이들을 만난다는 택시기사분의 말이다.

"뭐, 그냥요..."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아 막연히 '그냥' 이라고 대답하니, 어쩜 그렇게 오는 사람마다 대답이 다 똑 같냐하신다.

백운면을 지나면서 골짜기는 반으로 접힌다. 좁은 협곡을 따라 도랑물이 흐른다. 데미샘을 막 떠난 섬진강이다. 훌쩍 뛰어 넘어도 될 만큼 좁은, 한 걸음 밖에 안 되는 저 도랑이 섬진강이다. 여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도랑이지만 물이 철철 넘쳐흐른다. 수량이 많을 뿐 아니라 그냥 떠 마셔도 좋을 만큼 맑고 투명하다. 첩첩이 두룬 산에서 품어내는 골 물이 모여들어 만들어 낸 청정옥수다.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택시는 원신암마을을 지나쳐 비포장 산길을 오른다. 지은 지 그리 오래되 보이지 않는 팔선정이 데미샘 들목이다. 여기서부터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뚜렷한 등산로는 잘 관리된 느낌이 든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원시림이다. 아침 햇살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계곡 물에 부딪치며 반짝 빛이 난다. 까치수영, 노루오줌, 나리꽃, 산수국 등 풀꽃이 반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한 여름 꽃들이지만 섬진강의 시원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풀꽃은 더 아름답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숲이 주는 신비로움이다.

30분쯤 걸었을까, 돌무더기 속에 오롯이 자리한 샘물이 나타난다. 데미샘이다. “데미는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어서 천상데미로 불리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어 데미샘으로 불린다.”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데미샘을 떠난 섬진강, 아직은 도랑이다.


데미샘 아래 첫마을인 원신암 마을에는 일곱 가구가 산다. 하나같이 반쯤은 기울어진 토담집이다. 대문이 따로 있을리 없고, 낮은 돌담은 모두가 한가족일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산골마을 풍경이다.

데미샘을 떠난 섬진강은 원신암 마을을 지나 느랏골, 한밭, 반송, 동창리로 이어지는데, 동창리 동창삼거리까지는 이십리 길로 섬진강 530리 중 가장 산이 많은 구간이다. 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골짜기가 많고 물이 좋다는 뜻. 섬진강 본류 뿐 아니라 사방 곳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맑은 물은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그만이다.

 




[여행정보]

진안에서 임실 방향 30번 국도를 탄다. 백운면을 지나 동창 삼거리에서 742번 지방도로로 좌회전하여 8km 쯤 가면 원심암 마을. 마을 입구 ‘데미샘’ 돌표지석을 따라 오계치 방향 고개를 오르면 팔각 정자가 나오고, 계곡을 따라 30분 가량 올라가면 데미샘이다.

신암리에서 계속 직진하면 해발 850m 서구이재를 넘게 되는데, 고갯마루에 서면 신암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장수로 넘어가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숙박은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신암리 산촌마을 통나무집(017-631-1649)과 한밭 마을에 황토로 지은‘큰바위펜션(063-433-4978)’이 있다.


<글,사진> 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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