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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11년 째 흙집 짓고 있는 욕지도의 母女

by 눌산 2008.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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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출연만 열여덟 번 했다면.

가히 유명인사라 할 만 합니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욕지도의 최숙자 할머니 얘깁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단체로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가득하지만.

모녀는 11년 째 흙을 만지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4월 27일) 욕지도에서도 가장 끄트머리

바다와 맞닿은 곳에 자리한 모녀의 흙집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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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자 할머니 흙집 근처의 오두막.

무주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순간.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통영으로 달렸습니다.
소위 방외지사들만을 골라 찾아다니는 지인이
얼마전 다녀왔다는 욕지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였습니다.

언젠가는 손수 작은 오두막 한채 짓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살기에
한번은 꼭 뵙고 싶었습니다.

통영은 이따금 스쳐 지나는 곳이었습니다.
거제도나, 소매물도 같은 섬여행을 하면서 잠시 들려가는 정도였지요.

'봄 도다리'라고 했던가요.
통영에 왔으니 도다리 맛을 안보고 갈 수 없지요.
마침 행사때문에 나온 시청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부두가에 있는 '영성횟집' 을 알려주더군요.
부산 쏘주 '시원'이 술술 넘어 갈 만큼 맛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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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동산>이라 불리는 최숙자 할머니 모녀의 흙집.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욕지도까지는.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차도선과 카페리호가 있는데 소요시간과 배삯이 다릅니다.
6시 50분 첫배를 타고 승용차를 갖고 들어 갔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죠.
'춘자네 경사났네'라는 드라마 촬영팀이 배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객실에서는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구요.
티브이 없이 산지가 10년이 넘어 그런지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군요.
분명 탈렌트 몇명은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화장실에서 눈만 마주쳐도 '저 사람 탈렌트 아닌가.'하고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욕지도 여객터미널 표파는 여직원에게 흙집 짓고 사는 할머니 댁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욕지도 지도를 꺼내더니 "일로 쭈~욱 가가꼬 예, 우로 가다, 좌로 가다 하므 됩니더."
길을 묻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설명이 술술 나옵니다.

할머니의 흙집은 유동마을에서 산길로 1km 가량 올라가야 합니다.
섬에서 산길이라... 그렇습니다.
'섬 속의 섬'과도 같은 맨 끄트머리였습니다.

승용차는 할머니의 집 100여 미터 전방까지 갈 수 있지만.
마을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갔습니다.
최소한의 예의란 생각에서요.
(이 부분은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멀리서 봐도 단박에 알아 볼 만큼 할머니의 집은 독특했습니다.
흙집에 하얀 페인트를 칠한. 이국적인 느낌과 함께 묘한 분위기의 집이었으니까요.
모녀는 '맨 땅에 해딩'을 하고 있었습니다.
논도, 밭도 아닌 풀밭에서 잡초를 뽑는 중이었으니까요.
잡초뽑기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뒤돌아 서면 뽑은 만큼 다시 자란 잡초의 '대단한' 생명력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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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흙집 입구에 세워진 '남근석담'.

노폐물 배설기관, 생명의 원천기관, 극치의 사랑을 표현하는 표현기관의 의미를 가진
남근석담을 세운 것은  <새에덴동산>이 '불순물이 없는 참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아가페적 사랑을 교제하는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맨 땅에 해딩'하는 모녀는 바보일까요?
잡초를 손수 뽑지 않고 제초제를 뿌린다면?
그건 땅을 죽이는 일입니다.
모녀의 주식은 땅에서 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땅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는 모녀는
잡초 하나 하나를 손으로 뽑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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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면류관'이라 명명한 모녀의 작품과 '야곱의 우물'

그걸 아는 제가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호미로 잡초를 뽑고. 뽑은 잡초를 옮기고. 두어시간 도와드렸습니다.
저처럼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잠시지만 일손을 도와드리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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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오두막입니다.

오래 된 구옥을 개조한 것이지요.
언제나 하늘이 보이는 지붕의 '스카이 창'이 이색적입니다.


벽채는 그 자리에서 나온 큰 돌을 정으로 쪼아서 조각을 낸 다음.
흙과 함께 바른 것이라고 합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손으로 돌을 깨고. 하나 하나 쌓아 올린 시간과 정성을요.

강원도 인제와 충북 영동의 산중에 살면서 잠시 흙을 만지는 경험을 해봤기에
바라 본 다는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그동안의 과정을 들으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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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 집을 손수 짓는 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때문이 아닙니다.
내 손으로 이루었다는 성취감 때문도 아닙니다.

한담 한담 쌓아가는 과정과 벽이 세워지고, 지붕이 올라 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물런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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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예의가 없다고 합니다.
어느 관광지에 온 듯 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지요.
방송을 보고 왔기에 잠시 착각을 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의 집을 방문했다는 것이지요.
허락없이 방문을 열어보고, 세간살이 하나 하나 뒤적여 본다고 합니다.
무슨 동물원 원숭이 구경 하듯이 말입니다.

제가 갔을때도 무작정 사진부터 찍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집주인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최소한 양해는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가끔 소리를 버럭 지르시더군요.
"사진 촬영 금집니다."라고요.
물론 예의없는 사람들 한테만 그러십니다.
기분이 좋으시면 손수 만들었다는 호박 젤리를 나눠주시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욕지도의 명카수 나와랏~!"하시며 따님을 불러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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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과 사진을 찍으며 좋은 포인트까지도 알려주십니다.

"야~야 뒤에 꽃밭도 나오게 해야 이삐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입니다.
욕지도에 들어 온 처음 3년 동안 먹을게 없어 남의 밭에 버려진
고구마 무광(고구마순을 쓰기위한 처음심은 고구마)을 주워다 먹고
영양부족으로 이빨이 다 빠져 버린 모녀가 아니던가.
11년 동안 호미 하나로 저런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 모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런 행복한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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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갓 꽃도. 저리 이쁘더군요.

모녀의 행복은 곳곳에서 묻어 납니다.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꽃이 심어져 있고.
거대한 구조물 사이 모닥불 항아리며 굴뚝 까지도 손수 흙을 발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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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욕지도로 들어오게 된 장본인인 할머니의 따님 윤지영 씨입니다.

당시 윤지영 씨는 위장암 말기의 시한부 인생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떠냐고 여쭤보았습니다.
"밥 세 그릇 씩 묵는데 뭐 물어볼거 있나."하십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아니지만 거의 완치나 다름없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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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씨가 만든 '욕지도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다 함께......
'아침이슬'을 부르며 춤을 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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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만으로는 지중해의 어느 별장에 온 느낌입니다.

파란 하늘과. 끝없는 바다. 노란 봄꽃의 향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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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하얀 '남근석담'이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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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자 할머니의 젊은 날 모습

아~아 그 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지혜의 성 쌓으려고
낙도의 무인촌을 찾아오던 그 날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식욕, 정욕, 명예욕, 아파하며 벗어 놓고
화려한 세상 속을 탈출하던 그 날을

- 1997. 7. 13 -


다들 한마디씩 합니다. "젊었을땐 참 미인이셨네."
제가 보기엔 지금이 더 미인이십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이 땅 최고의 미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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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욕지도에서의 다섯 시간 대부분을 모녀의 흙집에서 보냈습니다.
관광을 간게 아니고 모녀을 만나고. 모녀의 흙집을 보고 싶었으니까요.
사실. 다른데 눈 돌릴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까지 가슴이 아픕니다.
온 몸에 느껴지는 전율로 인해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힘들었을 모녀를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모녀가 꿈꾸는 '에덴동산'이 그리운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죽어가는 딸을 바라 보는 어미의 마지막 선택이었을 겁니다.
아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겠지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미는 딸을 데리고 섬으로.
그것도 섬 속의 산중으로 들어왔으니까요.

절박함이 아닐까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함 때문에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픈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녀가 그랬던 것 처럼. 한 10년 쯤 흙을 만져보면 알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저도 할머니의 그런 미소를 가질 수 있을까요?


언젠가. 답을 얻게 된다면. 다시 한번 할머니를 뵈러 가고 싶습니다.



사진 : Fuji Reala 필름 스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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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07.18 01:46

    그림같은 풍경과 그림같은 사람들... 정말 동화속의 주인공들이 있다면 바로 저 모녀 두분의 경우가 아닐까요?
    현실에서는 동화속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감성을 지켜가며 살아가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느새 웃음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좋은 구경 많이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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