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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뒷집 어르신이 가져오신 홍시 다섯 개

by 눌산 200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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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 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펜션 바로 뒤에 아주 오래된 구옥 한 채가 있습니다.
그 집에 사시는 어르신 말씀으로는 당신의 할아버지 때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토담집이죠. 짚을 섞은 흙과 돌로 벽을 쌓고 나무 기둥을 세운, 전형적인 토담집입니다.
사방으로 두룬 돌담이 얼마나 예쁜지 오가는 사람들 마다 한마디씩 하고 지나갑니다.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저런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집에 사는 어르신은 많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비오면 빗물에 흙이 쓸리지 않을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집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르신의 집입니다.
펜션 건물이 너무 거대해서 상대적으로 비좁아 보이지만,
구석구석 어르신의 손떼가 묻은 집은 나름대로 편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비에 쓸린 토담은 곱게 맥질을 해서 윤이 날 만큼 깔끔합니다.
연기가 잘 빠지도록 설계된 부엌이나 툇마루, 뒤란 등
어디 하나 흠잡을데 없는 완벽한 집이라 할 수 있지요.
민속촌이나 박물관에서 보는 그런 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사는 집과 살지 않는 집은 우선 공기부터 다릅니다.
흙집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떠난 집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습한 흙은, 특히 여름철 무너지기 쉽상이지요.
흔히 만나는 폐가의 모습들이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쓴 집은 자연으로 되돌려 주는게 맞겠지요.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다양한 재질의 건축자재가 난무하지만,
이 땅에 짓는 집으로는 흙 만큼 좋은게 없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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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빈 과자 박스에 홍시 다섯 개를 담아 건네주십니다.
오며가며 어르신의 감나무를 쳐다 봤더니, 제 마음을 읽으신 모양입니다.
"아직 맛이 덜 들었네."하시면서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빈 과자 박스 안에 담긴 홍시 다섯 개을 보고 있자니 어르신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여름내 애호박을 얻어 먹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지난 추석때 꿀차 두 병을 갖다드렸습니다.
저야 뭐 드릴만한게 없으니까 사다 드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어르신 말씀이 "콩 한 쪽을 나눠 먹어도 마음이 가야 하는 법이지...."하시더군요.

바로, 이런게 시골 사는 맛이죠.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이 가득합니다.

홍시 다섯 개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아까워서 먹을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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