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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꺼죽은 벗고 들어 오이소. <승부 마을-승부역>

by 눌산 2008.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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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일(2005/10/2-11/22)간의 낙동강 도보여행 기록입니다.

 

 

어둠이 오기 전 서둘러 잠자리를 찾아들었습니다.
승부 마을 들어서면서 만나는 첫번째 집.
콘크리트 슬라브 집이지만 동네 분과 한잔하는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귀한 송이 맛도 보았지요.
토박이가 아니어서 아쉬움은 남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혹 다음에 또 다시 승부 마을을 찾는다면 그 집에서 하룻밤 더 묶게 될 것 같습니다.
여행은 역시 사람 맛이니까요.

 

집 주인 내외는 수원에서 살다 이곳으로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몸이 안좋아 쉴 요량으로 찾아들어 건강도 되찾고 안정적인 시골 생활에
한창 재미가 붙은 듯 합니다.
만 9년째라고 합니다.
오지를 찾아 여행다니다 눈여겨 봐두었던 곳,
싼 땅값도 마음에 들었지만 산골에 푹 들어 앉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리우면 차타고 나가면 될 일이고,
조금 불편한 생활은 더불어 살며 오가는 정이 있어 충분한 보상이 될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들은
모두가 딱 들어 맞은 것이지요.

 

시골 생활에 관심들이 많다 보니 땅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들 합니다.
"꺼죽만 벗고 들어오면 돼."
주인 어른 말씀입니다.
시골 생활 아무나 못한다는 얘기지요.
결국 욕심이라는 얘깁니다.
가진 거 다 갖고, 누리면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하나를 버리면 두개를 얻을 수 있는 법, 조금만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저도 산중을 헤매다닌지는 10년이고,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 생활 두해쨉니다.

 

세상살이 다 그렇습니다.
돈없으면 어디 도시 생활이라고 편하나요.
한세상 잘 살다가면 그만인 걸.
도시고, 시골이고, 따지고 보면 다를 것 하나 없습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지요.
저요?
도사 아닙니다.
도 닦아 본 적, 아니 도 닦을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제 오두막 주변에 널린 돌도 못 닦고 있는 상황에 웬 도입니까.^^

 

 


자, 날이 밝았습니다.
승부 학교 마을 뒤로 해가 떠오릅니다.
가는 햇살이 민박집 산사나무에 걸리자 마을에 온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아주머니는 한사코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밥을 말아 배낭에 넣어주십니다.
아, 하룻밤 편안하게 잘 자고, 송이 안주에 소주 몇잔 받고,
저녁식사에 아침, 낮밥으로 먹으라고 김밥까지 싸주시고,
그게 얼마인 줄 아십니까.
만오천원 드렸습니다.
저보고 날강도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혼자오는 사람은 원래 그렇게 받는답니다.

 

승부 마을에 가시면 꼭 심규현 씨댁(054-672-6052)에서 주무십시오.

 

 

 

 

 









승부 마을은 크게 철길 건너 맞은편 학교 마을

(옛날에 학교가 있던 곳이라 그렇게 부른답니다.)과
승부역 옆 역마을로 나뉩니다.
잠시 후 만나보시겠지만 소평지나 마무이 등
한가구가 사는 마을이 여럿 있구요.
승부의 아침이 열립니다.
아침 기온이 차갑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걷자니 겨울을 느끼게 합니다.

 

요즘은 고추를 따고, 고랭지 양배추를 뽑는 철입니다.
일손이 부족해 석포나 태백에서 까지 사람을 불러 온다고 합니다.
역병때문에 시들어진 고추밭도 여럿 보입니다.
고추는 역병이 들면 전멸입니다.

 

 

 

 

 


승부역은 강 건너에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출렁다리는 몇해전 태풍에 쓸려 떠내려가고 다시 놓은 것입니다.
고요한 마을에 이른 아침부터 중장비 소리가 요란합니다.
10월 19일 첫 기차를 필두로 22일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풍열차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한창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잊혀져가던 승부 마을이 활기를 되찾은 건
바로 이 단풍열차와 눈꽃열차라고 합니다.

 

 

 

 

 


영동선의 옛 이름인 영암선 개통 기념비입니다.
이승만 박사의 친필이라는 소개 표지판이
역마을 한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역마을에는 모두 다섯가구가 삽니다.
대부분 홀로 사시는 노인들 뿐이지요.
기차 역과 맞붙은 산자락, 문을 열면 기찻길과 마주합니다.
마당이 따로 없을 만큼 옹색한 공간에 기막힌 배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좁은 공간에, 앞 뒷집과 마주보지도 않는
공간 활용은 어느 건축가라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살고 있는 새막골에 팔수 형님이라고 계십니다.
그 집 또한 마당에 차 한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습니다.
팔수 형님으로 부터 그 마당을 넓힌 과정을 얘기 들으며 결코 좁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너른 땅이 없어 산비탈을 파고 들어 집터를 만들고,
마당은 절벽에 한칸 한칸 돌을 쌓아 넓혔기 때문입니다.
20미터쯤 되는 한줄 쌓는데 1년씩,
딱 10년 걸렸다고 합니다.
저의 옹색하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것은 바로 피눈물로 쌓은 돌담이
한줄 한줄 늘어나 마당이 되었기에 그렇습니다.

 

땅 얘기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주로 높은데 올라 앉은 양반들이지요.
비에 젖어 쳐진 몸, 몽롱한 정신이 지껄인다고 해도 좋습니다.
영동선 열차를 타고 태백으로 여행 한번 해보십시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집,
두루 두루 둘러보십시오.
아마, 그래도, 그들은 땅투기 계속하겠지요.

 

 

 

 

 









역마을과 마주한 터널은 승부와 분천을 갈라 놓는 차단막입니다.
더이상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오직 기차만이 다닐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승부에서 분천까지 양원역과 딱 두 정거장이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조차도 없습니다.
강을 따라 걷다 도강하거나 철길로 걸어야 하는데,
그것은 목숨을 내 놓은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역마을을 지나 강으로 내려서면 강자갈이 깔린 소롯길이 있습니다.
학교마을에서 12년을 살다 3년 전 새로 집을 짓고 들어 온 이한규 씨댁입니다.
소평지라고 하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좁은 땅이지요.
약 4천평 되는 공간 끄트머리에 집이 있고, 나머지는 고추와 황기가 심어져 있습니다.
승부마을은 행정상으로 석포면이지만 소평지는 소천면에 속합니다.
승부마을과 가깝고, 마지막 집인데, 굳이 행정상의 나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천면소가 있는 현동을 갈려면  길이 없으니 석포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합니다.
이한규 씨는 <천분질서>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늘이 나눈 질서를 거슬리면 안된다는 얘깁니다.
지들이 뭔데....?
줄 그어 놓고 무슨 면, 무슨 면 한단 말인가.
이건 제 생각입니다.

 

 

 

 

 


이한규 씨집과 마주한 봉우리가 배바위산입니다.
7부 능선쯤에 돛대를 닮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한규 씨 생각은 다릅니다.
배바위산과 마주한, 이한규 씨 집 바로 앞 오미산에 올라 배바위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돛대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돛대 모양의 산에 길게 누운 능선이 노를 닮았고,
노의 끝은 강에 닿아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산 이름을 붙일때,
바로 이 오미산 자락에 올라 본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시 승부역입니다.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 꽃밭도 세평...
오래전 이곳에 근무하던 역무원이 바위에 새겨 놓은 글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승부를 유명하게 만든 말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 만큼 협착한 골짜기 끄트머리,
승부역은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오지라는 말도 다 맞는 얘깁니다.
늦게 해가 뜨고, 일찍 지다보니 그만큼 하루 해가 짧습니다.
제 기억에 승부는 늘 겨울이었습니다.

 

 

 

 

 
















노인 두분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분은 통리장을 보러 가는 길이고,
또 한분은 울산 딸내집에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장보러 가는 분은 빈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계시고,
딸내집에 가는 분은 보따리가 여럿입니다.
"할머니 사탕 드실래요?"
"담배나 한개 주소."
그냥 사진 찍기 미안해 사탕을 드릴려고 했더니만
역시 멋쟁이 할머니십니다.

 

 

 

 

 









이른 시간에 찾은 승부역에서 커피 두잔을 마셨습니다.
한분은 성함을 잘 모르겠고,
또 한분은 구면인 정해 씨지요.
승부역을 찾을 때마다 마신 커피가 꽤 될 듯합니다.
갈때마다 역무원 한두분은 바뀌는데 으례이 커피를 내 주셨지요.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단풍잎을 닮았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습관처럼 누군가에게 말을 건냅니다.
그건 뭔가 하나 건져볼까하는 직업 의식도 무시 못하겠지만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좋기 때문입니다.
처음보는 얼굴, 모두가 낯설지만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는 느낌들이
살맛나게 합니다.
바로, 세상사는 맛이고,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지요.
여행을 가면 꼭 한사람쯤  사귀십시오.
아주 오래전, 제가 여행가의 꿈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된 말입니다.
아무리 멋진 풍경도 며칠이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만
사람에 대한 기억은 평생가기 때문입니다.
어눌한 말솜씨로 제법 잘 나가는 개그맨이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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