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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절절히 그리운 사람은 19번 국도를 타라.

by 눌산 2008.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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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국도 타고 강원도 횡성 서석에서 충주 목계나루까지


여행을 참 많이도 했다. 오죽했으면 여행이 업이 됐을까.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여행을 왜 하느냐고. 그럴때 마다 난 그리워서 한다고 했다. 좀 근사한 말을 해주길 바랬겠지만. 난 그 이상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걸었고. 때론 차를 타고 국도를 달렸다. 좀 더 한적한 곳을 찾아 지방도로나 산길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4차선으로 뻥 뚫린 요즘의 국도는 재미가 없다. 빽이 없어, 인물이 없어서 인지 몰라도 아직 넓혀지지 않은 국도를 보면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아직 살아 있어서.

사는게 힘드냐. 그럼 떠나. 다가오는 친구에게 해주는 말이다. 어디가 좋아. 그냥 아무데나. 그냥 국도 같은데 말이야. 아. 19번 국도 좋다. 거기 가바. 녀석들은 아마도 근사한, 아니 밤의 역사라도 만들만한 그런 곳을 알려주길 바랬겠지. 허구헌날 길에서 사는 놈이니까. 보기 좋게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일거다. 하지만 말이다. 여행이란 말이다. 장소니 목적지니 그런 거 따지면 그건 여행이 아니지. 아무튼. 그 많은 녀석들 중에 19번 국도로 달려 간 녀석은 한 놈도 보지 못했다. 더 이상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19번 국도는 절절히 그리운 사람들에게 딱이다. 꽃놀이 철만 아니라면 국도 변에 밥먹을 만한 식당 하나 찾기도 힘든데가 바로 19번 국도다. 그만큼 한적하단 얘기다. 대신에 그 이름만으로도 정이 넘치는 작은 도시가 휴게소 마냥 중간 중간 자리하고 있다. 횡성-괴산-보은-영동-무주-장수 같은. 번듯한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뭐 먹을 만한게 있던가. 무조건 군청 앞으로 가면 된다. 군청 주변 골목 안으로 들어가 허름한 식당을 찾아가면 그 고장에서는 그래도 먹을 만한 집이다. 아니,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총길이 446.3km에 달하는 19번 국도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국도 중에서도 꽤 긴편에 속한다. 강원도 횡성 서석에서 남해 미조항까지 내륙의  크고 작은 고을 수십 군데를 지난다. 홀수 국도 번호는 한반도의 중심을 세로로, 짝수 국도 번호는 가로로 가르는 길의 구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여행을 꽤 하는 편에 속할 것이다. 그것은 네비게이션이라는 대단(?)한 물건이 세상에 나오기 전 지도는 여행길에 있어 필수품이었으니까. 국도를 알면 전국이 내 손안에 있소이다, 아니겠는가.

천리가 넘는 길을 하루에 달린다는 것은 무모하고, 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급한 볼 일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최소한 3박 4일을 잡아야 19번 국도를 타봤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땅 내륙을 관통하는 중심도로이자, 그만큼의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다. 횡성 서석에서 출발한 19번 국도는 원주-충주-괴산-보은-영동-무주-장수-남원-구례-하동을 거치며 남해 섬 끄트머리 미조항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그 아름답다는 하동포구 80리 길이 바로 19번 국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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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국도의 시점 서석에서는 56번 국도가 교차한다. 여행꾼이라면 이 56번 국도르 모르면 간첩이다. 수도권에서 강원도 여행을 갈때 지름길이자, 전형적인 강원도 산골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속살과도 같은 길이 바로 56번 국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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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에 있는 '응골축제'. 카페 겸 민박이다. 산골에 있는 건물 치고는 꽤 세련됐다. 하지만 주인은 무지 촌스럽다. 저 집 주인이 이 글을 보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느즈막히 음반을 낸 가수이기도 한 주인은 또 오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가진 분이다. 덕분에 자주갔다. 언젠가 이 집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적이 있다. 산중에서 뜬금없는 j&b를. 그날밤은 밤새 노래도 불렀다. 10년 동안 단 한번도 노래방을 가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노래를 못 불러서가 아니다. 술 마시면 겁나게 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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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을 출발한 19번 국도는 남으로 달린다. 전형적인 산촌 풍경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는다. 이 길은 시속 60km로 달려도 빠르다.
국도는 서석-청일-갑천 면소재지를 지나 횡성에 이른다. 지방도로가 19번 국도의 연장으로 국도가 된 길이다. 그 때문인지 국도 주변에는 언제부터인가 펜션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만큼의 통행 차량도 늘었다. 지겹도록 한적한 길이었는데. 언젠가 는 길 한가운데 앉아 있는 부엉이도 만났고, 고라니를 칠 뻔도 했었고, 나물꾼 할머니를 태워다 드린 적도 있었다. 아, 그리고 구형 코란도를 타고가다 일자로 쭉 뻗은 가드레일을 u자로 만들어 버린적도 있었고, 한겨울에 차가 고장나 길거리에서 모닥불 피우고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참 많이도 다닌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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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준비가 한창인 농가. 장작만 보면 욕심이 난다. 쌓여 있는 장작만 봐도 배가 부른다. 장작이 이뻐 보이고 맛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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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겆이가 끝난 농가는 휴식 중이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한. 강원도는 일년의 절반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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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천. 무지 무지 촌스러운 강이다. 화장기 하나 없는 촌색시를 닮았다. 촌 자가 들어가면 다 좋다. 촌두부 촌집 촌닭 같은. 역시 난 촌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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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천 면소재지. 도로의 확장으로 건물과 간판이 쌈빡하게 바뀌었다. 드라마 세트장 같기도 하고. 어느 외국 거리를 보는 듯 하다. 간판을 통일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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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숯가마. 해질녘 연기 냄새가 구수하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숯가마는 친숙하다. 어릴적엔 놀이터였다. 내 아버지는 숯가마 최사장이었다. 숯가마 따는 날은 돼지를 잡았다. 그땐 숯가마가 깊은 산중에 있었다. 나무를 운반하기 힘들어 나무를 베면 그자리에서 숯을 구웠다. 나무 베는 작업부터 숯을 굽는 시간 동안 임시 거쳐 하는 움막도 있었다. 구들장이 깔린 방은 언제나 철철 끓었다. 아이들과 노는 것 보다 숯가마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적 부터 애늙은이 소리를 많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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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천에서 잠시 19번 국도를 벗어나면 병지방 계곡을 만날 수 있다. 한때는 오지로 소문난 곳이다. 유리알 처럼 물빛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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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지방 계곡 바위 틈에서 만난 제비꽃 그리고 돌단풍.
5월에 피는 돌단풍 꽃도 이쁘다. 단풍이 들면 더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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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은 한우가 유명하다. 그런데 너무 비싸다. 500원 짜리 배추 부치기라도.... 배 부른 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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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토지문학관. 주인 떠난 집 분위기가 썰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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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이다. 목계나루가 있었던 곳에 지금은 다리가 놓였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곳이지만 다 옛날 얘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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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나루 표지석만이 옛날의 영화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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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 그 옛날의 목계장터는 온데간데 없고 바람만이 흐른다.


[tip] 네비게이션을 버려라. 국도여행은 지도 한 권이면 충분하다. 19번 국도에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19번 국도는 있는 것 내다 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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