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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오지

금강(錦江)이 내려다 보이는 오지마을

by 눌산 200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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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감동의 연속이다. 길이 험해서 그렇고, 구비구비 흐르는 금강을 한 눈에 바라보며 걷는 길이 너무 예뻐서 그렇다. 무엇보다 첩첩 산중 한가운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에 턱하니 자리잡은 마을이 있어 그렇다. OO마을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수십 수백 년 터 잡고 살아 온 마을이다. 한때 여덟 가구까지 살았다는 마을에는 딱 한 집에 한 명이 산다. 그것도 곱디 고운 할머니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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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에서 만난 노인은 산너머에 마을이 있다고 했다. 4륜 구동이라면 갈 수 있겠지만 워낙 길이 험해 걸어서 가라고 일러 주었다. 강을 건너 산으로 오른다. 굽이가 심한 좁은 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나 다닐 만한 폭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길은 더 좁아진다. 절벽 아래로는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천길 낭떠러지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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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하나만 넘으면 마을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연이어 서너 개의 고개를 넘어야 했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 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다. 누가, 무슨 연우로 이런 깊은 산골까지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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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쌓인 푸근한 길을 지나자 대나무 숲이 사람의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숲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산다는 뜻이다. 설령 민가가 없어도 옛날에는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낙엽송 숲 또한 마찬가지. 화전의 흔적들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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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쯤 걸었을까. 거짓말 처럼 마을이 들어 앉아 있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이지만 해는 이미 산을 넘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 빼꼼히 보이는 금강을 제외하고는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첩첩산중. 딱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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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이 된 감나무와 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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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한다면. 평생을 이 산중에 살아 온 분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또 다른 표현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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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들이 신이 났다. 이 감 저 감 한번씩 쪼아대며 감나무를 점령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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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대부분 빈집이다. 떠난 자리의 흔적은 언제나 쓸쓸하다. 지금은 차가 다닐 만한 길이라도 있지만 그 길이 뚫린 것도 불과 몇해 전의 일이다. 그동안은 마을 뒷산 능산을 타고 옥천까지 걸어서 다녔다. 왕복 60리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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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유일한 주민이자 주인인 김OO 할머니. 추운 날씨에 찾아오느라 고생했다며 숫가락으로 녹인 대접에 탄 커피를 내 놓으신다. "내는 대접에 탄 커피가 더 맛있다. 그래도 손님인데 이쁜 커피잔에 따라야지."  낯선 방문객에 놀라지나 않으셨는지. 주섬주섬 먹을거리를 내 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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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토종벌꿀이다. 아들 손주 줄려고 했다는 귀한 토종꿀. 한 입도 안 남기고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건 할머니의 성화때문이었다. 내 집에 온 손님 대접할 게 별로 없다시며 다 먹고 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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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박이가 내 1년 후배 아이가." 할머니의 고향은 포항이다.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 3회 졸업생으로 대대장까지 하셨단다. "내도 찢어지게 가난했지. 공부를 잘해서 난 주간을 나왔고, 대대장까지 했다 아이가" 여고시절 사진을 꺼내 보이시며 어제 일 처럼 지난 50여 년 전의 이야기를 풀어 내신다. 1년 후배에게 받은 선물이야기며, 장한어머니상을 받은 이야기까지. 밤을 새도 다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할머니의 연세는 올해 일흔 하나. 46년 전 이 마을 청년을 만나 결혼하셨다. "힐 신고 산넘어 이 까지 왔어. 사람 하나 믿고 온기지." 지금도 첩첩산중 오지인데 46년 전이야 말 할 것도 없을게다. 길이 있을리 만무했고, 전기도 없었다. 머리에 이고 지고 30리 길 옥천장을 오가며 나물장사를 했다. 그동안 써오신 일기를 모아 책을 한 권 내고 싶다고도 하셨다. "내가 살아 온게 소설이지." 소설보다 더 재밋을 소중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명함 하나 주고 가라. 내 핸드폰 번호도 하나 적어 가고." 일반 전화는 수시로 불통이라 할머니를 핸드폰을 주로 사용하신다. 산이 높아 그런지 핸드폰은 빵빵하게 터진다. 또 찾아뵈도 되겠냐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미리 알고 산을 내려가는 내게 "또 올끼제?"하신다. 오늘따라 드릴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급히 산을 내려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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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기 직전의 햇살에 빈 밭 고랑 곁에 선 낙엽송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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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금강을 다시 본다. 할머니는 저 강이 원망 스럽지 않았을까. 도망가고 싶어도 길을 몰라 도망가지 못했다고 했다. 농으로 들리지 않는 건 그만큼 지난날의 삶이 고단해서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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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기엔 아까운 길이다. 언제나 그렇 듯, 수없이 산중마을을 여행했지만 산을 내려오는 길은 슬프다. 이 시간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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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46년 전으로의 여행은 강을 다시 건너면서 끝이 났다.

오랜 습관 같은 고질병이 하나 있다. 비포장 길을 오래 달렸을때나 이렇게 산중에서 내려 섰을때 만나는 곱게 포장 된 반듯한 직선의 길에서는 멀미를 한다. 산중의 길은 속도제한이 필요없다. 굳이 천천히 가라고 하지 않아도 천천히 밖에 갈 수 없는 길이다. 삶 자체가 느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길은 급하다. 아니 급히 내쫒는 길이다. 천천히 달리면 왜 천천히 가냐고 윽박지른다. 아마도 난. 산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팔자인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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