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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하심(下心)으로 이끌었던 사라진 배알문(拜謁門), 태안사

by 눌산 200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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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남대문이 화마에 휩싸였을때 우리 국민들은 한없는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불타버린 처참한 흔적은 너나없이 책임감에, 죄책감까지 느껴야 했습니다. 국보 1호라는 상징성 뿐만이 아니라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재 복원 현장을 만납니다. 잘못된 문화재 복원은 화마에 사라진 남대문 만큼이나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로 태안사의 배알문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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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숲길은 마음을 씻어 주는 길입니다. 절집은 숲길이 끝나는 곳이 있습니다. 태안사는 2km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이 제대로 남아 절집 중 하나입니다. 기생오래비 같은 포장 도로가 아닌, 먼저 폴폴 나는 흙길입니다.

매표소를 지나 조태일 시문학관, 능파각, 일주문에 이르는 이 길에는 모두 네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먼저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면 돌아오라는 귀래교(歸來橋), 마음부터 씻고 들어오나는 정심교(淨心橋), 세속의 모든 번뇌를 씻고 지혜를 얻어 가라는 반야교(般若橋), 도를 이루기 전엔 속세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해탈교(解脫橋)까지.

모퉁이 한굽이 돌때 마다 몸과 마음은 정화가 됩니다. 걸어서 가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동차로 순식간에 절 마당까지 들어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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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여덟 살까지 이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외갓집이 태안사 절 마당 앞에 있었으니까요. 외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도 했고, 스님 곡차 심부름도 했습니다. 이 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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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능파각.
구멍 숭숭 뚫린 능파각도 복원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이 다리를 수박다리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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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각에서 일주문까지는 근사한 전나무 숲길입니다. 이 좋은 길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칩니다. 자동차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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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곁으로는 부도밭입니다. 비신(碑身)이 깨진 채로 귀부(龜趺)와 이수(머릿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이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 윤다(864∼945)의 부도비(보물 제275호)입니다. 태안사를 132칸 규모의 대찰로 중창하고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등을 말사로 거느렸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고 합니다. 태안사는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사찰이었습니다. 쇠락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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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마당은 제 놀이터였습니다. 맞은편 공양간만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입식 구조로 빠꾼 것만 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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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이란 긴 이름의 동리산 자락에 구산선문을 일으킨 혜철스님의 부도탑은 대웅전 뒷편 절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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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으로 이끌었던 배알문(拜謁門)입니다. 누구라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낮은 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배알문은 새롭게 단장 된 '신상'입니다. 3년 전에 보수 공사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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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윗부분을 합판으로 막은 것이 보입니다. 하심으로 이끌었던 낮은 문을 허리 꼿꼿히 세우고 들어갈 만큼 높게 만든 것이죠. 문제가 되었는지, 아니면 아차, 싶었는지 합판을 사용해 높이를 낮춘 것입니다. 기특합니다. 어찌 그런 기막힌 생각을 하게되었는지.... 이런 뜻깊은 소중한 문화유산 복원을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에게 맞기진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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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전의 모습입니다. 늙어 허리가 굽은 기둥과 '신상'을 비교해보시죠. 그리고 원형의 머리 부분까지.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건설의 나라, 토목 공화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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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으로 이끌었던 배알문(拜謁門) 대신 삐까번쩍한 '신상'을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기둥을 확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요. 저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계시는 혜철스님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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