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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여행

해운대에서 공짜술 마신 사연

by 눌산 200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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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주인이 되고 처음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허구헌날 여행 다니면서. 무슨....
그동안은 업무차. 였고.
지나는 길에 보고 찍고 했던 것이고요.^^
아무튼.
펜션 주인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예약 손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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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낯선 곳입니다.
여행가인 저도.
부산여행은 그저 남들 다 가는데 몇곳 수박 겉핥기식이었죠.

이번 여행의 목적은 부산의 맛집 탐방입니다.
자갈치에서 부터 광복동-남포동-해운대-기장,
그리고 동해 남부바다를 스쳐 포항까지.

이 정도 기본 계획을 잡았습니다.

자갈치에서 꼼장어를 먹고,  광복동에서 완당도 먹고.
해운대로 향합니다.
그런데 허름한 주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부산 맛집 어쩌고 하더니 고작 주점? 하시겠지만.
제겐 나름대로의 여행 원칙이 있습니다.
남들 다 가는데 보다는 제 맘에 드는 집을 골라 찾아갑니다.^^
끌리니 들어갈 수 밖에요.

해운대 '간이역'입니다.
주 메뉴는 동동두와 파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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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간이역'이란 간판 보다는 밖에 걸린 걸개그림에 끌렸습니다.
그것은 이정하 시인의 '비오는 간이역에서'였습니다.
문학소년도 아니고.
이정하 시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끌렸습니다.

실내는 평범합니다.
찌든 술냄새에 칙칙한 조명,  안치환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그저 흔한 주점입니다.



비오는 간이역에서
-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 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릅니다.
이런 시를 보면 쏘주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좋은 시구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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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벽에는 설경구,  하지원...또.... 유명 연예인의 사인이....
그렇다면.  유명한 집이네?
눌산도 찾은 집이니.  더 유명해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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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주 한병과 맥주 한병,  파전을 시켰습니다.
마른 멸치 안주가 기본으로 나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쏘주 두어 병은 비울 수 있는데...^^

부산 땅이니,  시원(C1)을 시켰습니다.
저는 어느 지역을 가든,  그 지역 소주를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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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이 급한 중년의 남자 손님 한분이 급히 들어옵니다.
저~기 '뺑끼통'을 나오더니.
백세주 한병에 역시 파전을 시키고는
혼자 마시더군요.

여행자의 입장에서.
같이 한잔하시죠? 했습니다.
시골사람 티냈던거죠.
합석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부부가 함께 조선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아.. 부산 일대는 조선소가 많죠.

백세주 한병을 다 비운 남자는 자리를 일어서며
제 자리 술값까지 계산을 하겠답니다.
극구 만렸지만.  그렇게 공짜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 겪는 건 아닙니다.
젊었을때.  많이 주고 받던 일이죠.
하지만 여긴 해운댑니다.
바가지의 명소.  라고요.....
물론 다 옛날 얘기지만 말입니다.

그냥.  사는 얘기 정도.
부산까지 여행 온 얘기 등등
시시콜콜한 얘기였지만.
도심 한가운데서 사람의 정을 느낀 것이죠.

명함을 드렸습니다.
무주 오시면 제 집에서 모시겠다고요.

술에 취해 객기 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 처럼.  사람 냄새가 그리웠던 것이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저도 줄 수 있는 기회가 올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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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 듬뿍 들어간 김치에 공기밥 두 그릇까지 비웁니다.
주인은 조기 두 마리까지 서비스로 내오고.
배터질 뻔 했습니다.^^

공짜술에,  서비스 안주에,  밥까지.
이모집 찾아간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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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역장님.  아주 멋진 분이신데. 
쏘주 한병에 사진기까지 흔들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은 저 역장님과 점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손님들이 몰려와서....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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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없이 한편의 시에 이끌려 들어간 집에서.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만들고 왔습니다.
여행,  제대로 했죠?

그날밤, 매섭다는 해운대의 봄바람은.  고요했습니다.


'간이역'은 15년 된 집입니다.
해운대에서 물어보면 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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