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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공공건축프로젝트

무주 공공건축프로젝트 -1 무주와 건축가 정기용의 만남

by 눌산 2020.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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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와 건축가 정기용의 만남

10여 년간 전무후무한 무주 공공건축프로젝트 진행

감응의 건축가’, ‘건축계의 공익요원’, ‘공간의 시인건축가 고() 정기용

무주읍 전경

사람과 땅의 의견을 듣는 감응의 건축가이자 공공건축의 대표 건축가로 건축계의 공익요원’, 또는 공간의 시인으로 불리는 정기용 건축가는 무주에서 10여 년간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여전히 소읍(小邑)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골 동네에서 그는 30여 건의 공공건축물을 탄생시켰다. 무주와 정기용,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역사상 유래 없는 놀라운 일을 벌이게 되었을까.

우연한 기회에 무주군 안성면의 청년들이 예술인마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자문과 답사를 겸해 찾은 것이 무주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안성면의 청년들은 땅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마을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것을 백지화 시키고 예술인마을을 건설하여 지역을 알리는 계기로 만들려고 했다. 이러한 노력에 감동받은 정기용 건축가는 조건 없이 청년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 후 완전한 성공은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무주군 안성면 무수동에 구름샘 예술인마을이 들어선다. 정기용 건축가는 자신의 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필자를 무주로 이끈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안성면사무소 (현재 안성면 행정복지센터)

또 다른 인연으로 안성면 진도리에 귀농해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던 허병섭 목사와의 만남을 들 수 있다. 허 목사와는 영세민을 위한 저렴한 집을 보급해 보자는 취지에서 흙건축에 대한 논의와 연구를 하며 서울 근교에서 함께 실험 작업까지 해 이미 친분이 있었다. 허 목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진도리에 마을 회관을 흙건축으로 지을 수 있는지 정 건축가에게 의견을 물어보았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최초의 흙건축 공공건축물인 현재의 진도리 마을회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주민들을 설득하고 주민들의 생각을 배려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 끝에 일궈낸 성과였다.

정기용 건축가는 마을회관 상량식에서 10여년의 긴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 결정적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김세웅 전() 무주군수다. 김 전() 군수와의 만남은 현재의 전무후무한 무주 공공건축물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되어준 일대 사건이었다. 정기용 건축가는 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자를 무주에 붙잡아 두게 한 필연이었다. 라고 당시의 만남을 회고하였다.

그 후 김세웅 전() 무주군수와 정기용 건축가는 지역건축과 우리나라 공공건축물의 생산방식, 농촌풍경에도 어울리고 군민들의 삶의 질도 높이는 건축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의기투합한다. 그리고 무주군의 첫 발주 사업으로 안성면주민자치센터의 건축설계와 건축프로그램 기획을 진행한다. 30여 채에 이르는 무주 공공건축물프로젝트의 첫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등나무 운동장

우리나라 최초의 흙건축 마을회관,

면사무소에 목욕탕·천문대 짓고,

창고를 헐고 그 자리에 잔디밭을 조성한 군청 청사,

전 세계에 하나뿐인 등나무 운동장,

갤러리 같은 납골당 등 30여 곳의 무주 공공건축물

무주군의 공공건축은 타 지역에 비해 한발 앞서 갔다. 민선자치 첫 해부터 군청 담장을 허물고 주변 환경을 열린 공간으로 바꾸었다. 무주읍사무소를 비롯해서 안성·무풍·적상·부남·설천면 등 무주군 6개 읍·면사무소를 주민이 주인이 되는 주민중심 생활공간으로 바꿨다. 이 외에도 군청, 무주시장, 공설운동장, 의료원, 예체문화관, 청소년수련관 등 공공건축물을 생태도시의 개념에 맞게 리노베이션하거나 새로 지었다.

무주 공공건축물프로젝트는 당시 인구 26천명이 거주하는 소읍에 수십 개의 공공건축물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건축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시작은 안성면 진도리 주민들과 함께 흙건축 마을회관을 지으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콘크리트 일색으로 변해가는 농촌마을에 자연친화적인 건축공법을 통해 공공건축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정기용 건축가는 주민자치센터에 주민들의 공간을 만들면서 사람과 식물과 시간이라는 요소가 함께 공존할 수 있게 했다.

20여 년이 흐른 현재, 그가 만든 무주의 30여개에 달하는 공공건축물은 어떻게 변했을까. 일부는 설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비가림막을 덧씌워 외형의 변화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맨 처음 공공건축물들을 만들면서 부여했던 건축가의 의도와 의미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건물을 외형이 아닌 공간이 주는 의미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주군청 뒷마당

 

건축가 정기용 그는 누구인가

작가의 생애

1945년 충북 영동군에서 출생했다. 호는 환천(幻天).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서울대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72년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1975년 프랑스 파리장식미술학교(ENSAD) 실내건축과, 1978년 프랑스 파리 제6대학(UPA6)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정부 공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1975년부터 1985년까지 파리 소재 건축 사무실을 운영하다 1986년 기용건축을 설립했다.

정기용 건축가는 우리나라 공공 건축에 있어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특히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약 10여 년에 걸쳐 진행한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연출한 등나무운동장과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준 안성면사무소 내의 공중목욕탕, 부남면사무소 내의 천문대 설치 등 무주에 30여 건의 공공건축물을 남겼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MBC가 기획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김해에 여섯 개의 어린이도서관을 설계하였다. 그 외에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2010년 개관한 '박경리 문학의 집' 등을 설계하였다.

건축물에 흙건축 철학을 투여함으로써 생태건축의 공공성을 획득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2000년 교보환경문화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 서귀포시 칠십리 건축상제주시 건축상순천시 건축상, 2007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성균관대 석좌교수, 문화연대 공동대표, 문화재위원을 역임했으며, 2010년 일민미술관에서 감응: 정기용 건축전을 가졌다. 2011311, 지병인 대장암으로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2012년에는 고인의 삶의 철학과 그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각본/감독 정재은)가 개봉되었다. 이후 우리나라 공공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축학도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무주 공공건축물에 대한 답사가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정기용 저 '감응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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