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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지리산 자락 부전골 산골아낙

by 눌산 201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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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

지리산 자락 부전골 산골아낙

산골의 봄은 더디게 온다. 골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더 촉촉하다. ‘봄눈’ 녹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때문이다. 산골의 봄소식은 이런 물소리 바람소리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송림 사이 잔설은 아직 겨울빛을 띄고 있지만 고샅 돌담에 핀 산수유 꽃은 이미 봄을 알리고 있다. 협착한 골짜기를 가득 채운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니 어느새 근사한 흙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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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골에도 봄의 소리가 들린다.


30년 서울 생활의 종지부는 ‘고향’이었다.

김인식(59) 씨가 제2의 삶을 시작한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부전골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서상 나들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지리산이 품은 고장 함양에서도 오지로 소문난 곳으로 예로부터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던 화전민들의 터전이다. 수십 가구가 살았다는 골짜기에는 지금 김인식 씨 혼자 산다. 물이 좋아 여름이면 간간히 찾아드는 피서객들이 있긴 하지만 오지로 소문난 골짜기답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는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다. 그의 집까지는 승용차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비포장길이 기다린다. 겹겹이 쌓인 지리산 봉우리 사이로 난 흙길은 하늘을 향해 곳추 선 송림이 더 깊은 숲을 만들고 있다. 산림욕이 따로 없다. 잠시 걷는 수고에 대한 보답치고는 과분한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그의 고향은 함양이다. 대대로 양조장을 했던, 함양에서도 소문난 부잣집 딸이다. 3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10년 전의 일로 사업실패가 고향 행을 택한 이유라고 했다. 고향.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다. 특히 힘들 때 고향은 용기와 또 다른 힘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는 터닝 포인트라는 게 있다.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들게 마련인데, 당황스럽고 막막한 상황에서 택한 고향 행은 일종의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처음 고향에 내려와 휴천이라는데서 3년 정도 살았어요. 시골 살이 연습인 셈이었죠. 그렇게 살면서 2년 정도 집터를 찾아다니다 지금의 부전골에 터를 잡고 집을 짓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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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으로 만는 곶감 맛은 가히 일품이다.
 

여자 홀로 산골에 산다는 것은

시골 살이는 무엇보다 연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라면 반드시 합의를 거쳐야 하고, 터를 잡는 게 우선이지만, 시골 살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실패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경로로든 시골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필자도 공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낭만적인 시골생활을 꿈꾸기 때문인데, 특히 이런 산골이라면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다음에 낭만도 있고, 여유도 부릴 수 있다. 차근차근 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인식 씨가 부전골에 터를 잡은 건 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 할 수 있지만 고향 행을 결심한 이후 지난 10여 년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은 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것도 인적이 드문 오지마을에 여자 혼자 몸으로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할아버지께서 남자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아마도 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었겠지요. 이름 때문인지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용띠가 팔자가 드세다고 하잖아요.”

마음먹으면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는 김인식 씨는 앞뒤 잴 것 없이 일부터 벌렸던 셈이다. 처음 정착해 시작한 토종꿀도 그렇고, 곶감만 해도 감히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양을 한다. 어떤 일이든 보통의 여자와는 다른, 강한 그의 성격이 이런 오지마을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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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작업은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산골 생활은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필자가 찾은 날도 김인식 씨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한창 곶감을 출하하는 시기라 손질해서 포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혼자 감당 할 수 없는 일은 아랫마을 아주머니들이 도와주신다. 지난 가을에 말린 곶감만도 낱개로 2만 5천 여개에 달한다. 모두가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그만큼 맛도 좋다. 그의 곶감을 먹어 본 사람은 반드시 재주문을 한다고.

“곶감은 정성입니다. 감을 깎고 바람에 말리는 과정 하나하나가 손으로 하다 보니 대충해서는 맛이 안 나죠.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먹는 사람도 기분 좋을 거 아닙니까. 덕장은 보통 철골로 짓지만 비용이 더 들더라도 나무로 지었어요. 가을이면 매일 같이 덕장에 올라가 이렇게 왜칩니다. 감아, 감아, 곶감아! 부디 발갛게 잘 여물어서 명품곶감으로 태어나 거라.”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서 산골아낙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진다. 말린 곶감은 다시 손으로 주무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당도가 높아진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교차. 16도 이상의 일교차가 나는 곳에서 말려야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당도가 높아지고 곶감의 맛이 살아 있다고 한다. 부전골은 그런 조건에 딱 맞는 곳이다.

산골의 봄은 바쁘다. 농사 일 준비도 해야 되고,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새순을 보는 일 역시 또 다른 일상이다. 김인식 씨의 마당에는 바쁜 농사 일 틈틈이 가꾼 구절초, 양귀비, 작약, 금낭화 등 꽃밭 가득 그의 마음이 심어져 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 보셨어요?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 생명의 숨소리 말이에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산골생활 10년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자연 속에서의 삶이란 스스로 즐기는 것이 아닐까.

 <글, 사진> 최상석 여행작가 (http://www.nulsan.net)

월간 산사랑 3,4월 호 http://sansarang.kfc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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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송림이 아름다운 부전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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